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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지중해 바람’을 닮은 마세라티 SUV 르반떼

도로 위 예술작품 ‘디자인’과 ‘배기음’만으로도 존재감 충분
편안한 도심 주행에서부터 고속도로에서는 맹수본능 깨어나

박용환 기자 (yhpark@ebn.co.kr)

등록 : 2020-02-12 08:41

▲ 마세라티 르반떼ⓒEBN 박용환 기자

바람을 닮은 차. 마세라티의 첫 번째 SUV 르반떼는 사나운 바람처럼 몰아칠 때를 기다리지만 일상에서는 지친 마음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는 멋진 녀석이다.

마세라티의 모델들은 서 있을 때는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이 명작의 도도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시동을 걸고 달리는 순간 감춰진 스포츠카의 DNA가 폭발하는 야수의 본능을 가진 꽃사슴이랄까.

그 중에서 르반떼는 또 다른 마세라티의 매력을 보여준다. 실용성이 높아진 SUV라는 옷을 입었지만 마세라티의 우아한 디자인의 정체성은 해치지 않았다.

속도감 있는 쿠페형 디자인을 적용한 르반떼는 전고가 높아지면서 웅장해진 라디에이터 그릴이 더 강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알리에리 콘셉트카’의 이미지가 영감을 준 그릴은 마세라티의 디자인에 핵심적인 요소다. 멀리서 봐도 마세라티라는 정체성을 한눈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디자인도 있겠지만 그릴의 역할이 크다.

고양이 눈매를 닮은 헤드라이트와 아이코닉한 C필러, 프레임리스 도어는 쿠페 디자인의 측면 실루엣을 과시해 시그니처 디자인을 완성했다.
▲ 마세라티 르반떼ⓒEBN 박용환 기자

메르세데스-벤츠는 삼각별이 없으면 허전하듯이 마세라티의 화룡점정은 트라이던트(삼지창)다.

마세라티의 상징인 삼지창이 왜 예쁜가 했더니, 마세라티가의 여섯 형제 중에서 유일한 예술가였던 다섯째인 마리오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삼지창의 모티브는 이탈리아 볼로냐 마조레 광장의 넵투누스(바다의 신 포세이돈) 조각상의 삼지창이었다. 우리들 초등학교나 중고교 시절 교가에 단골로 등장했던 동네 산이나 하천의 정기를 받아 어쩌고저쩌고 하는 가사가 마세라티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등장한 셈이다.

1914년 설립된 마세라티 회사 동네의 대표 조각상이 바로 마세라티 삼지창의 영감의 원천됐던 것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포세이돈의 힘을 고스란히 경주용 차에 녹아내길 바랐던 마세라티 가문의 인장과도 같은 상징이다.

이러한 강력한 질주의 염원은 이후 마세라티의 모델의 이름을 지을 때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르반떼’, ‘기블리’ 등은 그런 바람을 담은 ‘바람’의 이름이다. ‘바람’ 같은 차라! 정말 탐나는 차가 아닐 수 없다. 더 빨리 달리는 차를 만들겠다는 마세라티의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차를 산 운전자는 내차가 ‘바람’과 같이 빠른 차라는 뿌듯함으로 타게 되니 기분 좋다. 과거 달리는 ‘말’에 천리마, 비룡 등의 이름을 붙인 마주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 마세라티 르반떼ⓒEBN 박용환 기자

바람의 이름을 처음 붙인 차는 1963년 출시된 ‘미스트랄’이다. 프랑스 남부에서 부는 국지풍인 ‘북풍’의 이탈리아어이다.

시승한 르반떼는 온화한 바람에서 순간 강풍으로 돌변하는 ‘지중해의 바람’을 뜻한다. SUV 르반떼의 성향을 어쩌면 그렇게 잘 표현했을까 무릎을 칠 정도다.

르반떼는 딱 그런 차다. 평상시에는 온화하다. 그러나 성질을 부리면 사납다. 디젤 모델을 타고 서울 한남 마세라티 전시장에서 강릉으로 250여km를 타고 달린 소감이라면 그 이름의 그 차다.

마세라티를 처음 몰게 되면 부담스럽다. 엔진룸을 포함한 보닛이 길게 뻗어 나와 있어 운전이 다소 긴장된다. 전고가 낮은 마세라티의 세단들은 앞뒤 범퍼와 옆문에 혹시 도로의 턱들이 부딪칠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르반떼는 SUV의 장점인 전고가 세단보다 높아 시야가 유리하고 턱에 범퍼와 문이 부딪힐 일이 적다.

전장은 5m가 넘는 5020mm에 전폭은 2m에 육박하는 1980mm이지만 막상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스포츠카의 유려한 곡선이 차를 생각보다 작게 보이게 하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디젤의 초반 강력한 토크로 시내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 필요도 없다. 일상에서는 넘치는 최대 61.2kg.m의 토크를 내 초반 가속감은 일품이다.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힘껏 치고 달린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6.9초만에 도달한다. 후륜의 힘껏 등을 밀어내는 질감은 고속 주행에서 제 맛이다.
▲ 마세라티 르반떼ⓒEBN 박용환 기자

가솔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력은 약하지만 최대 275마력이 달리는데 있어 부족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럭셔리 SUV의 연비가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디젤의 장점인 높은 연비는 르반떼에도 적용된다. 복합연비가 9.3km/ℓ에 달한다.

ZF 8단 자동변속기는 속도를 무리 없이 뽑아낸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돼 SUV임에도 고속주행은 물론 곡선구간도 날렵하게 빠져 나간다. 급가속에서 앞뒤바퀴의 순간적인 토크 배분을 통해 버려지는 힘없이 온전히 속도로 전환된다. 곡선주로에서는 불안하지 않은 믿음직한 핸들링으로 운전이 여유롭다.

급가속과 곡선주행이 남다른 것은 15분의 1초만에 전륜과 후륜을 0:100에서 50:50으로 전환할 수 있는 Q4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속과 곡선에서의 안정감은 마세라티의 기본기에서 나온다. 전후 무게가 5대5로 완벽하게 배분돼 있는 균형이 핵심이다. 르반떼도 마세라티의 기본기가 그대로 적용됐다.

앞머리가 툭 길게 뻗어 간혹 운전에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엔진을 운전석 쪽으로 당기면서 무게 중심의 균형을 맞추는 마세라티만의 노하우의 결정체다. 보닛이 길어지면서 디자인에서 고속감이 살아나는 것도 마세라티의 특징이다. 다만 이로 인해 실내 공간의 손실은 감수해야만 했다.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5멀티 링크 서스펜션 레이아웃에는 에어 스프링과 전자 제어 스카이훌 쇼크 업소버가 장착돼 있다. 에어 서스펜션은 승차감을 고속에서의 안정성을 위해 단단함에도 불구하고 노면 잔진동과 충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풍절음 역시 거슬리지 않는 럭셔리 SUV 다운 면모를 갖췄다.
▲ 마세라티 르반떼ⓒEBN 박용환 기자

운전모드 변화도 눈길을 끈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크렁크렁한 마세라티만의 배기음과 함께 강력한 힘이 차를 들썩이게 한다.

마세라티 하면 배기음을 빼놓을 수 없다. 달리고자하는 욕망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것이 배기음이다. 아무리 달려도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마세라티는 배기음으로 치환시킨다. 멋진 음악과도 같은 배기음은 귀를 타고 뇌를 자극한다. 우렁찬 음량은 심장의 막동수를 올려 속도감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운전자에게 선사한다.

마세라티는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와 함께 튜닝 전문가, 피아니스트, 작곡가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악보를 그려가며 배기음을 조율하는데 이를 작곡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마세라티의 배기음을 예술작품에 비유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악적 성향과도 매우 닮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마세라티의 배기음이 강렬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을 가진 파바로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만큼 마세라티의 배기음이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르반떼는 실내 역시 명품을 입었다. 최고급 이탈리안 가죽 브랜드인 ‘폴트로나 프라우’가 시트를 비롯해 실내 대부분을 둘러싸고 있다. 이탈리안의 장인정신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마세라티는 2001년부터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최첨단 편의장치도 적용돼 운전이 훨씬 수월해 졌다. 스포츠카의 DNA를 가지고 있어 직접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성향이 높을 수도 있지만 최첨단 편의사양인 차선이탈 방지시스템과 어댑티드 크루즈 기능은 막히는 도로나 정속주행을 할 때 사용해 볼만 하다.

특히 차선이탈 방지시스템은 핸들을 보통이상의 힘으로 잡아줘 고속주행에서 쏠쏠하지만 차선의 중심을 완벽하게 잡아주지는 못하고 차선을 인식하고 안쪽으로 튕겨내는 식으로 작동한다.

마세라티는 저속보다 역시 고속에서 생동감 넘친다. 하지만 르반떼는 저속에서도 편안한 승차감이라는 남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4륜구동 시스템이 발휘하는 순간적인 힘의 배분은 스포츠카 브랜드의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게 한다. 여기에 예술품과 같은 디자인과 명곡처럼 울리는 배기음은 르반떼를 운전하는 본인은 물론 도로위의 수많은 관객들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주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어쩌면 마세라티를 타는 즐거움은 시선을 주는 관객들이 함께 있을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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