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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살롱] 장관의 혁신·공감능력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9-07-30 15:02

▲ 혁신에 대한 정책은 생물(生物)처럼 바로바로 다뤄져야 할 일이지 건어물처럼 쌓아놓고 시간나면 꺼내볼 일이 절대 아니다. 결정권자가 형식에 천착하면 거기에 담긴 내용은 살아 숨쉬지 못한다. ⓒEBN

우리나라에도 이장과 군수 출신 행정자치부 장관, 소설가와 영화감독 이력을 지닌 문화관광부 장관이 나온 적이 있다. 참여정부 때다. 파격인사에 대해 여론은 '인물실험'이라 비판했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파격이 아니라 그걸 파격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창동 감독의 인생은 자신의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고교시절부터 문청(文靑)이었던 그는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다니다 국어교사가 된다. 사회인으로써 한창 활동할 당시 그는 첫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힘겨운 시절을 보낸다. 크나큰 아픔이 그를 스토리텔러, 창작의 길로 인도했을까.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소설과 영화감독, 대학교수를 거쳐 장관이 됐다.

평생 펜과 분필, 메가폰만 들었던 그는 49세 나이로 부처 수장이 됐다. 이같은 인사는 현장 문화예술인을 문화행정가로 기용하겠다는 대선 공약 실천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국정의 중심은 다양성 추구와 미래 도전에 두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이기도 했다. 아는 바를 실천하며 삶으로서 보여준 사람이 '검증된 전문가'라는 생각에서였다.

취임 기자회견이 있던 날 이창동 장관은 자신의 차 산타페를 직접 몰고 청사에 도착했다. 그를 '모시러' 간 수행실장은 조수석에 앉았다. 행사장에서 양해를 구하고 넥타이를 푼 그는 "형식이 굳으면 내용이 살지 못한다. 문화예술인들을 자주 만나는 문화부 공무원들은 권위주의보다 일상적 감각과 형식을 통해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며 공감력을 강조했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느껴보려는 노력이자 나와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힘으로 정의된다. 그는 직접 쓴 취임사를 문화부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창동 장관은 감독 시절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을 향한 공감의 시선을 영화에 담았다. '초록물고기'는 한 청년의 무모한 도전과 파멸의 과정. '박하사탕'은 시대가 입힌 상처를 거슬러 순수했던 시간을 찾아나서는 586세대 한 남자의 삶. '오아시스'는 사회가 외면한 백수청년과 장애여성 간의 사랑이야기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소외된 누군가의 안녕을 염려하는 그의 영화에 세계인도 공감으로 화답했다. 그는 세계 명감독 반열에 오른다.

이장과 군수 출신 장관은 또 어떤가. 사소한 우연에 운명이 좌우된다는 말을 김두관의 인생을 보며 실감한다. 남해 토박이인 김두관은 남해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등록금이 없어 한동안 남해에서 농사를 짓는다. 세 명의 형들 도움으로 간신히 대학에 들어간 그는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편입, 이후 고려대 운동권에서 활동하던 동생의 영향을 받아 사회운동에 눈 뜬다.

이후 남해로 돌아가 남해농민회를 조직한 그는 동네이장으로 선출된다. 인생 첫 '행정 경험’을 현장 최말단에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1989년 남해신문을 창립하면서 그는 남해 젊은 일꾼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남해신문은 여전히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5년 첫 지방단체장 선거는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37살, 전국 최연소 당선을 기록한 그는 7년간 남해군수로 활약했다. 남해 벚꽃축제를 직접 홍보하기 위해 남해대교에서 번지점프를 선보인 것과 월드컵 본선 진출 덴마크팀 훈련 캠프를 남해에 유치한 일화는 지역사회에서 유명하다.

그는 참여정부 개각 때 44세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를 낙점한 노 대통령은 당시 "김 장관은 학벌 없는 사회, 보통사람이 성공하는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라고 소개했다.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행정력을 삶을 통해 쌓고, 증명해왔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40대 젊은 장관들로 채워진 참여정부 초대 내각은 2003년 '젊은 정부'·'문제해결 행정' 그리고 미래를 추구했다.

2019년 현재,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인물론은 케케묵은 얘기일까. 아니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철학을 계승했지만, 박근혜 정부만큼이나 '늙은 정부'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초대 내각 평균 연령은 노무현 정부 52.2세, 박근혜 정부 59.1세, 문재인 정부 61.5세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도 60살이 넘는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를 할 후배를 찾는다'며 공개 프로포스에 나설 정도다.

물리적 나이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와 연대하지 못하는 정책과 현실인식 또한 올드하다 못해 '꼰대'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참모들과 아래위 구분 없는 원탁 테이블에서 회의하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참모들과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하나씩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모습은 신선하기는 하지만 '이미지정치'로 이해하는 쪽이 더 많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대처한 정부는 단연 참여정부로 꼽힌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파병, 부산항 항운노조상용화 개혁, 경주 방폐장 건설, KTX 천성산터널 공사 등 수많은 난제가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해결됐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정치적 책임을 떠안겠다며 국민을 설득시키기도 했고, 세대교체를 핵심 기치로 내세웠기에 정부와 부처 장관들은 미래세대와 연대할 수 있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사의를 공표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으로 지낸 2년간 특유의 추진력과 뚝심으로 가계부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혁신금융 정책, 기업 구조조정 등 묵은 과제를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위원장이 묵은 사안을 정리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차기 위원장은 금융산업이 생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놔야 한다는 게 금융권 전반의 기대이자 요구다.

암호화폐 리브라 프로젝트로 글로벌 중앙은행을 꿈꾸는 미국 페이스북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꿈을 갖고 있다. 비즈니스는 생각의 크기만큼 자란다. 금융 AI는 월스트리트 등 국제경제거점에서 실질적인 수익 창출을 꾀한다.

유럽은 이미 인공지능(AI)을 제조업 AI, 금융 AI, 헬스케어 AI, 법률 AI, 교육 AI 등 분야별로 쪼개 디테일을 다룬다. 일본은 올 3월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통합과학기술혁신회의에서 매년 AI 전문 인력 25만 명을 양성하고, AI 수업을 모든 대학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다고 공언했다. 한국은 어떤가.

간담회에서 쏟아진 핀테크인들의 성토와 금융인들의 한숨이 우리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 19일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마련한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에서 국내 대표 핀테크 기업과 금융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혁신이 (정쟁의) 볼모로 잡혀 있다."(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법안 통과 기대로) 현재 활시위가 팽팽히 당겨진 상황인데, 통과가 안 돼 시위가 끊길 수 있다 생각만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서래호 미래에셋대우 상무), "우리도 선진국 기업처럼 (데이터를 잘 활용한) 기술도 있고,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있다"면서 "단 하나 발목을 잡는 게 데이터 규제 문제"(배경화 현대카드 상무)라고 했다.

그만큼 혁신에 대한 정책은 의사결정 속도에 달렸고 취지보다 실행의 디테일에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또한 혁신은 생물(生物)처럼 바로바로 다뤄져야 할 일이지 건어물처럼 쌓아놓고 꺼내볼 일이 결코 아니란 생각이다.

▲ 김남희 기자/금융증권부
최 위원장 뒤를 이을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에 대한 하마평이 들린다. 벌써부터 금융권은 후보자들의 강남 보유 주택 상황 등 세평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인사검증을 통과해 청와대에서 유의미하게 살펴보고 있다는 일부인의 얘기도 들린다.

후보자들은 5060 행정고시, 남성 중심 엘리트 일색이다.

금융권은 이들의 자질과 지행일치 여부, 문제 해결능력을 따져보기보다 청문회 허들을 넘을 것인지에 관심이 더 많은 모습이다.

ECB(유럽중앙은행) 총재 후보, IMF(국제통화기금) 총재 후보들은 골드만삭스와 같은 치열한 민간현장에서 실질적인 경험과 문제 해법을 다뤘다는 특징이 있다. 인재풀도 더 많다.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의 대안제시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5월 기업인 모임 바른경제동인회 조찬강연에서 "평소 정부와 기업 간 대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현 정부 정책 결정자들과 기업이 갖고 있는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 한 나라의 경우 건물 미팅룸마다 공무원과 시장 플레이어들이 빼곡히 들어가 온종일 서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결국 정부와 기업 간의 유연성의 문제인데 대화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를 통해 다양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우리 사회가 마주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외교협회, 아스펜인스티튜트, 일본 마쓰시타정경숙과 같은 관민협력 씽크탱크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도 했다.

차기 금융위원장은 지금보다 더 많은 혁신적 정책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임기 3년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금융감독원, 민간기업 간 대화가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한다.

대화에서 참여자들의 공감능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관민 간의 대화 부족으로 인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주길 바란다. 금융 산업과 정책 참여자들이 지금보다 더욱 서로를 공감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