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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의 이행저행] 키코배상, 돌고돌아 은행으로?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9-08-20 12:41

▲ 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
"키코사태로 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간 이후 유암코가 대주주가 됐습니다. 금감원 분쟁조정으로 일부 피해금액에 대한 배상이 이뤄진다면 그 배상금의 용처는 유암코가 결정하게 되는데 실제 키코사태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죠."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난 장세영 전 일성 회장은 키코사태로 인한 은행권의 배상이 실제 피해자들에게 이뤄져야 한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19년간의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1984년 플랜트기업인 (주)일성을 설립한 장 전 회장은 이후 국내 플랜트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와 같은 장 전 회장의 성과는 사명을 일성엔지니어링으로 변경한 2010년 무역의날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 수상으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수출기업에 집중됐던 은행권의 키코상품 판매로 인해 장 전 회장과 일성도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2012년 3월 13일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접수한 일성은 이듬해 2월 7일 울산지방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 인가결정을 받았으며 4년 8개월여 후인 2016년 10월 27일 회생절차를 종결했다.

회생절차를 거친 후 회사이름은 일성하이스코로 변경됐으며 유암코(연합자산관리주식회사)가 일성하이스코의 지분 95% 인수와 함께 대주주로 올라섰다.

자금유동성 위기에 몰린 회사를 살리기 위해 투자유치에 나섰던 장 전 회장은 투자금마저 소진되며 사기혐의로 70대의 고령에 4년간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키코사태로 기업의 존폐위기를 겪었던 다른 경영자는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나하고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감방'이라는 곳이 바로 옆에 있더라. 사기든 배임이든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감방에 갔다온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며 씁쓸해했다.

회생절차를 거치며 장 전 회장의 회사 지분은 전부 사라졌고 키코사태를 겪었던 당시의 주주들 역시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없다. 피땀으로 일궈낸 기업의 주인이 이제는 자신이 아닌 유암코 등 은행권으로 바뀐 상황에서 전 경영자들은 주인이 바뀌었더라도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일성하이스코 등 4개 기업에 대한 키코피해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이들 기업이 신고한 피해규모는 1500억원에 달하지만 키코상품을 판매했던 은행권과의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의 배상안이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장 전 회장은 분조위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간에 배상금액이 나온다면 그 돈은 전부 일성하이스코의 재도약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암코는 올해 일성하이스코 매각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회생에 대한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해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의 공동출자로 설립된 유암코가 키코피해 배상금을 온전히 일성하이스코 재도약에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장 전 회장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일성이 입은 키코사태 피해금액의 대부분은 유암코 출자은행인 산업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장 전 회장의 설명이다. 금감원의 분쟁조정 권고안을 이들 은행이 받아들여 일성하이스코에 배상금을 지급하더라도 이 배상금이 출자금 회수라는 명목으로 다시 은행권으로 회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는 키코사태에 대한 배상금이 피해자 본인에게 전달돼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회생절차 이후 기업의 주인으로 들어앉은 은행들이 낸 배상금을 그대로 다시 회수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더이상 기업의 오너도, 경영자도 아닌 키코사태의 피해자들은 기업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금감원의 심사에서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법인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심사에서 개인이 보상받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재 키코사태 피해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채권단이 피해 당사자와 논의에 나선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은 금감원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법인간의 분쟁조정으로 인해 결정된 배상금을 법인이 아닌 개인에게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피해기업이 받은 배상금을 이전 경영자에 지급한다면 이는 배임행위로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키코공대위 측은 이와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10여년간 끌어온 키코사태 공방을 상식적인 결말로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으로 배상금이 나온다면 이 돈이 자식과도 같은 기업으로 들어가서 다시 연간 1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배상금이 채권단인 은행으로 회수된다면 그동안 고생하며 싸워왔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법적인 문제를 따지자면 물론 어렵기만 한 얘기입니다만…"

금감원 분조위 개최를 앞두고 키코공대위 측의 고민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